쿠바 야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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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쿠바는 아마추어 야구 최강팀으로 유명하다. 물론 실력이 아마추어라는 게 아니라, 그저 공산주의 체제라 자본주의 체제의 프로화 대신 아마추어리즘을 지향한다는 의미일 뿐 실력은 프로 수준이다. 야구 월드컵은 무려 25번 우승하며 독점했을 정도이고 준우승 4번, 4강 2번이라는 후덜덜한 성적을 거둬들였다. 불참한 8번을 빼면 참가한 대회에서 모조리 4강 이상 성적을 거둬들였다.
이는 피델 카스트로가 메이저리그 트라이아웃에 도전했을 정도로 야구를 사랑해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역대 야구 월드컵은 물론, 올림픽에서 2008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서 이길 때까지 단 한번도 쿠바를 이기지 못했다. 물론 베이징 올림픽 전 평가전에서 1승1패로 주고 받고, 그 이전에도 평가전에서는 간간히 쿠바를 이기긴 했지만[5] . 대신 대륙간컵 야구대회에서는 1999년에 4:3 극적인 역전승으로 첫 승리를 이미 기록한 적이 있다.[6]
1992년부터 정식종목이 된 올림픽 야구에서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은 5번 모두 결승에 올라 여전히 야구강호임을 보여줬다. 그리고, 야구에서 금메달도 3개를 받으며 올림픽 야구 최다 수상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나무배트가 국제대회에 도입되었으며 국제대회에 다른 나라에서 프로선수들이 출전하기 시작하면서 아마추어 최강인 쿠바의 위세도 한풀 꺾였다. 우승을 독식하다시피하던 야구 월드컵도 2011년에는 네덜란드에게 우승컵을 내줘야 했으며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회 직전의 평가전에서도 네덜란드에게 2패를 당했다. 그래도 대회는 무패로 8강까지 무리없이 잘갔지만 역시 네덜란드에게 또 패하면서 8강에서 멈춰서야 했다.
2015년 7월 미국과의 복교로 향후 쿠바 야구계의 큰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일단은 쿠바 출신 선수들이 자유계약 신분으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과거의 '순수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명목으로 국제대회에 나섰던 것에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일본프로야구, KBO 리그 등 프로리그에 진출하기 위한 '쇼케이스' 라는 목적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7][8]
2. 한국과의 인연?
성인대표팀 간의 맞대결이 유독 잦은 편이다. 프로선수들이 출전한 대회만 따지면 2000년 시드니올림픽 예선[9] , 2008년 잠실에서 가진 2차례 평가전[10] , 2008년 베이징 올림픽[11] , 2015 서울 슈퍼시리즈 등 6번의 맞대결이 이루어 졌고 야구 월드컵 등을 포함하면 13번 맞붙었다. 전적은 13전 4승 9패.##
3. 역대 성적
3.1.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역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전적 순위 : 6위'''
3.2. WBSC 프리미어 12
'''역대 WBSC 프리미어 12 전적 순위 : 7위'''
3.3. 올림픽
3.4. 팬아메리칸 게임
- 1951년 부에노스아이레스 팬아메리칸 게임 : 금메달
- 1955년 멕시코시티 팬아메리칸 게임
- 1959년 시카고 팬아메리칸 게임 : 4위
- 1963년 상파울루 팬아메리칸 게임 : 금메달
- 1967년 위니펙 팬아메리칸 게임 : 은메달
- 1971년 칼리 팬아메리칸 게임 : 금메달
- 1975년 멕시코시티 팬아메리칸 게임 : 금메달
- 1979년 산후안 팬아메리칸 게임 : 금메달
- 1983년 카라카스 팬아메리칸 게임 : 금메달
- 1987년 인디애나폴리스 팬아메리칸 게임 : 금메달
- 1991년 아바나 팬아메리칸 게임 : 금메달
- 1995년 마르델플라타 팬아메리칸 게임 : 금메달
- 1999년 위니펙 팬아메리칸 게임 : 금메달
- 2003년 산토도밍고 팬아메리칸 게임 : 금메달
- 2007년 리우데자네이루 팬아메리칸 게임 : 금메달
- 2011년 과달라하라 팬아메리칸 게임 : 동메달
- 2017년 토론토 팬아메리칸 게임 : 동메달
- 2019년 리마 팬아메리칸 게임 : 6위
3.5. 과거의 대회
3.5.1. 세계야구선수권대회(야구 월드컵)
- 1938년 1회 대회(영국)[12]
- 1939년 2회 대회(쿠바) : 우승
- 1940년 3회 대회(쿠바) : 우승
- 1941년 4회 대회(쿠바) : 준우승
- 1942년 5회 대회(쿠바) : 우승
- 1943년 6회 대회(쿠바) : 우승
- 1944년 7회 대회(베네수엘라) : 3위
- 1945년 8회 대회(베네수엘라)
- 1947년 9회 대회(콜롬비아)
- 1948년 10회 대회(니카라과)
- 1950년 11회 대회(니카라과) : 우승
- 1951년 12회 대회(멕시코) : 3위
- 1952년 13회 대회(쿠바) : 우승
- 1953년 14회 대회(베네수엘라) : 우승
- 1961년 15회 대회(코스타리카) : 우승
- 1965년 16회 대회(콜롬비아)
- 1969년 17회 대회(도미니카 공화국) : 우승
- 1970년 18회 대회(콜롬비아) : 우승
- 1971년 19회 대회(쿠바) : 우승
- 1972년 20회 대회(니카라과) : 우승
- 1973년[13] 21회 대회(쿠바) : 우승
- 1973년 22회 대회(니카라과)
- 1974년 23회 대회(미국)
- 1976년 24회 대회(콜롬비아) : 우승
- 1978년 25회 대회(이탈리아) : 우승
- 1980년 26회 대회(일본) : 우승
- 1982년 27회 대회(한국)
- 1984년 28회 대회(쿠바) : 우승
- 1986년 29회 대회(네덜란드) : 우승
- 1988년 30회 대회(이탈리아) : 우승
- 1990년 31회 대회(캐나다) : 우승
- 1994년 32회 대회(니카라과) : 우승
- 1998년 33회 대회(이탈리아) : 우승[14]
- 2001년 34회 대회(대만) : 우승
- 2003년 35회 대회(쿠바) : 우승
- 2005년 36회 대회(네덜란드) : 우승[15]
- 2007년 37회 대회(대만) : 준우승
- 2009년 38회 대회(유럽[16] ) : 준우승
- 2011년 39회 대회(파나마) : 준우승[17]
3.5.2. 대륙간컵
- 1973년 1회 대회(이탈리아)
- 1975년 2회 대회(캐나다)
- 1977년 3회 대회(니카라과)
- 1979년 4회 대회(쿠바) : 우승
- 1981년 5회 대회(캐나다) : 준우승
- 1983년 6회 대회(벨기에) : 우승
- 1985년 7회 대회(캐나다) : 우승
- 1987년 8회 대회(쿠바) : 우승
- 1989년 9회 대회(푸에르토리코) : 우승
- 1991년 10회 대회(스페인) : 우승
- 1993년 11회 대회(이탈리아) : 우승
- 1995년 12회 대회(쿠바) : 우승
- 1997년 13회 대회(스페인) : 준우승
- 1999년 14회 대회(호주) : 준우승
- 2002년 15회 대회(쿠바) : 우승
- 2006년 16회 대회(대만) : 우승
- 2010년 17회 대회(대만) : 우승
4. 유니폼
쿠바 야구대표팀 상징 중 하나는 너무나도 강렬한 유니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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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부터 하의까지 전부 빨간색에 파란색 언더셔츠가 쿠바 팀의 전통적인 유니폼. 이 유니폼이 야구무대에서는 쿠바의 상징처럼 표현된다. 마치 올블랙스라고 불리는 뉴질랜드 럭비대표팀처럼 말이다.
색상 선택이 뭔가 촌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해태 타이거즈의 검빨 유니폼마냥 상대팀의 기를 꺾는 유니폼이기도 했다. 그리고 피델 카스트로가 사랑하는 브랜드인 아디다스가 메인 스폰서를 오랜시간 동안 맡기도 했다. 2014년 부터는 중국의 의류 브랜드인 리닝(Li-Ning)이 스폰서로 참여 중이다.
[1] 연속 4회 출전[2] 연속 5회 출전[3] 연속 2회 출전[4] 연속 13회 출전[5] 국제 친선 대회에선 이미 1978년 네덜란드 할렘 국제야구대회에서 김시진, 최동원, 박철순의 호투로 2연승을 걷었다.[6] 당시 우리나라는 대학선발이었고 정대현, 조용준 선수등의 호투와 타격에서는 박한이, 신명철, 김원섭, 권윤민 등의 선전으로 승리했으며 이 대회부터 나무배트가 쓰이기 시작하면서 나무배트에 적응 못한 쿠바 팀은 타격에 고전을 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 대회에서 나무배트에 능숙한 프로선수가 다수 합류했던 홈팀 호주가 우승을 차지했으며 국제 친선 경기가 아닌 공식적인 야구 국가대항전에서 대한민국이 쿠바를 이긴 건 이때가 첫 승리였다.[7] 이미 쿠바 국대에서 중심타자로 활약한 거포 알프레도 데스파이네는 메이저리그에서 엄청 눈독들였으나 망명을 거부하고 2014년에 NPB로 진출하였다. [8] 그러나 망명하지 않은 선수는 연봉의 10%를 추가로 쿠바 정부에 내야 하고 그 외에도 몇 가지의 제한이 추가로 붙어 있기 때문에 아직도 구리엘 형제처럼 망명하는 선수들이 등장하고 있다. 거기다가 2019년 4월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망명하지 않은 쿠바인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막아버려서... 한동안은 망명해야만 메이저에 갈 수 있을듯.[9] 5:6 패[10] 1차전 2:6 패, 2차전 15:3 승[11] 예선 7:4 승, 결승전 3:2 승[12] 단 1회 대회는 미국-영국끼리만 참가해 치뤄진 대회였었다.[13] 1973년에는 2회 개최.[14] 결승에서 한국을 누르고 우승했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신명철이 호세 콘트레라스를 상대로 솔로홈런을 친 것이 결승전의 유일한 득점이었다.[15] 롯데의 최대성이 이 대회에서 맹활약하여 한국 대표팀을 결승까지 이끌었다.[16]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국가가 아닌 한 대륙이 개최. 개최 국가는 네덜란드, 독일, 산마리노, 스웨덴, 스페인, 이탈리아, 체코, 크로아티아 8개국.[17] 1회 대회인 영국이 미국이랑 경기를 하여 우승한 걸 감안하자면 마지막 대회를 우승한 네덜란드가 본격적인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럽 나라 우승 기록이다.